- 프란츠 카프카 지음/이옥용 옮김, 카프카대표작품선, 보물창고, 2008.

- 독서기간 : 2014. 12. 2. ~ 2014. 12. 10.


대학생일 때 카프카의 '심판'을 10번 정도 읽었던 적이 있었다. 결코 재미가 있어서 여러 번 읽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용이 너무 황당해서 오기로 여러 번 읽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카프카의 작품은 시간을 두고 여러 번 읽어야 그 깊이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30대가 넘어서야 깨닫게 되었다.


카프카의 소설은 재미가 없다. 카프카의 소설을 재밌다고 말하는 것은 솔직히 허세가 아닐까 싶다. 게다가 그의 작품을 한 두 번 읽어봐서는 당췌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건지 가늠할 수 없는 작품이 대다수이다. 그런데, 몇 번 되풀이 해서 차분하게 읽어보면 그의 작품은 "내 속의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부수는 듯한 도끼"이다.


중학교 3학년때 '변신'을 처음 읽었는데, 당시에는 이 작품을 이해할 수 없어서 무척 짜증을 냈던 기억이 있다. 이후로 고등학생, 대학생이 되었을 때 한번씩 읽었는데, 솔직히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카프카가 40세에 죽었다는데, 내가 그 나이가 되어 '변신'을 다시 읽어 보니 사뭇 느끼는 바가 많다. 문학평론가들이 이 작품에 감탄해야 할 것으로 강요하는 그런 류는 아니다.


이 작품에 대해 수천 수백개의 해석이 있다. 비평가들이야 늘 그렇지만 비평가들의 해석은 꿈보다 해몽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카프카에게 이 작품에 대한 해설을 직접 들어보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텍스트 하나하나에 병적으로 집착하길 좋아하는 비평가들의 예리한 작품분석이 과연 카프카의 집필의도에 부합하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전에는 '변신'을 읽으면서도 깊게 생각해보진 않았는데, 카프카 자신의 경험이 '변신'에 투영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에 대한 성격이나 감정묘사가 간결하고 건조하면서도 섬세했기 때문이었다. 역시나 뒷편의 작품해설을 읽어보니 그러했다.


어쩌면 나도 그레고르의 가족들과 같은 행태를 보인 적이 분명 있었을 것이며, 나로 인해 죽은 수많은 그레고르가 있을 수도 있다.


이 책에는 여러 단편이 실려 있다. 그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작품인 '법 앞에서'는 읽을 때마다 느낌이 새롭다.


카프카의 작품은 짧은 시간에 주마간산 식으로 읽어서는 결코 그 깊이를 느낄 수 없을 것이다.


- 밑줄 -


여전히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굵은 빗줄기가 하나하나 다 눈에 보이고, 땅바닥에 떨어질 때도 빗방울이 일일이 다 보였다. "변신", 33쪽.


하지만 지금 아버지는 아주 꼿꼿하게 서 있다. 그는 은행원처럼 황금색 단추가 달린 빳빳한 푸른색 제복을 입고 있었는데, 웃옷의 높고 빳빳한 깃 위로는 그의 강렬한 이중턱이 툭 튀어나와 있고, 짙은 눈썹 밑의 검은 두 눈에서는 긴장감이 감도는 눈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변신", 74쪽.


"그레테, 저 방 문 좀 닫거라." 그렇게 문이 닫히고 다시 어둠 속에 갇힐 때면, 그레고르는 등에 난 상처가 괜시리 쓰려왔다. "변신", 83쪽.


창밖으로 차츰 동이 트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바로 그 순간, 그레고르의 고개가 자신도 모르게 푹 꺽였다. 콧구멍에서 그의 마지막 숨결이 흐릿하게 새어 나왔다. "변신", 104쪽.


"누구나 다 법을 얻고자 있는 힘껏 노력하지요. 그 긴 세월 동안 법 안으로 들어가게 해 달라고 요구하는 사람이 왜 나 혼자밖에 없는 거요?"  법으로 들어가는 문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다 결국 노인이 되어버린 남자가 문지기에게 묻는다. 문지기는 그 남자에게 이미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가물가물하는 그의 귀에 들리게끔 고함을 질러 댄다. "여기서는 아무도 허락을 받을 수 없어. 이 입구는 자네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으니까. 이제 난 가서 문을 닫아야 겠어." "법 앞에서", 150쪽.


그렇지만 무슨 짓을 해도 내가 느끼는 것은 오로지 한가지 뿐이었습니다. 출구가 없다는 것이었지요.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161쪽.


인간들의 세상에서는 자유라는 말로 스스로를 기만하는 일을 너무 자주 하고 있더군요.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163쪽.


상처입지 않도록 배려하면서 말하면 말할수록 상처만 더 줄 뿐이다. "선고", 1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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