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은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지게 된다. 분당 원인은 1589년(선조 22년)에 발생한 '정여립의 난'이었다.

북인은 '조식' 계열, 남인은 '이황' 계열의 학자들이 가담하게 된다.

북인은 정인홍, 곽재우 등 의병장출신들이 많아서 정치적으로 강경파들이 많았다.

북인은 다시 '소북'과 '대북'으로 분당된다. 분당 계기는 선조의 유일한 적자인 영창대군과 당시 세자인 광해군을 사이에 두고 누구를 밀어줄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영의정 유영경을 중심으로 신진관료들이 가담한 '소북'은 영창대군을 지지했고, 임진왜란 당시 광해군과 함께 고생한 기성관료들이 주축인 '대북'은 광해군을 지지했다.

정권을 장악한 '대북'은 영창대군과 인목대비의 신병처리를 두고 분당된다. 둘 다 죽여야 한다는 이산해와 이이첨의 '육북', 둘 다 죽이면 안된다는 정인홍의 '중북', 영창대군만 죽이면 된다는 홍여순의 '골북'.

1613년(광해군 5년)에 서얼들의 떼강도사건이 발생했는데, 대북파들이 소북파를 제거하기 위해 이 강도사건을 역모사건으로 조작하여 영창대군과 인목대비, 서인과 남인계열의 선비들을 몰락시켰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건 이후 광해군도 몰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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