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리언 플린 지음/문은실 옮김, 몸을 긋는 소녀, 푸른숲, 2014, 첫판1쇄


2014. 10. 10. ~ 2014. 10. 25.


기나긴 터널과 같았던 미셀 푸코의 '감시와 처벌'을 완독하고 나서 무조건 추리소설을 읽으리라 다짐하고 집어든 작품이다. 다 읽고 나서 생각해보니 '플리치' 이후 거의 10개월여만에 추리소설을 선택한 것이었다.


책 날개에 인쇄되어 있는 '길리언 플린'의 사진을 보는 순간, 대학 다닐 때 요즘 말로 나와 "썸 탔던" 그녀가 생각이 나서 기분이 잠시 묘해지기도 했다.


아무튼 약간의 설레임과 흥분감, 그리고 서두르지 말고 침착하게 읽자는 다짐으로 보름 동안 차근차근 읽었다. 인물간의 관계도를 하나 하나씩 그려나가면서 마치 법서를 정독하는 것처럼 매우 꼼꼼하게 읽었다.


이야기 자체는 자극적이긴 하지만 꽤 재밌는 소설이었다. 그러나 솔직히 "정말 끝내주게 잘 썼다. 불안감을 자아내는 솜씨가 대단하다(워싱턴 포스트)"는 격찬을 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에서는 인물이 꽤 많이 등장하는 편이지만, 이는 추리소설에서 독자들에게 혼란을 주기 위한 하나의 기법일 뿐이다. 그런데, 많은 인물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중요 단서를 가진 인물을 비교적 용이하게 포착할 수 있는 편이어서 구성의 완성도가 다소 미흡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또한 아무래도 우리나라와 미국의 생활문화적인 차이가 있다보니 인물간의 갈등관계나 기타 여러 상황들에 대한 상상력에 약간 무리가 오긴 했다.


애당초 이 소설을 드라마화 내지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집필한 듯한 인상이 강하게 들었다. 헐리우드 영화의 마무리 문법이 이 소설에서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의 일반적인 대중소설이 그러하지만.


직유법으로 묘사된 문장이 많은 편이라 다소 피곤했다 "펠라티오를 조롱하는 십대 소녀의 전자음 같은 목소리(p.275)"는 도대체 어떤 목소리인지?


단어 하나하나의 섬세함을 중시하는 작품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인물간의 대화나 주변 환경의 묘사, 남용이라 할 정도의 과다한 직유법 표현들을 다듬어서 좀 더 한국정서에 부합하게 번역해도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 겉면에 너무 지나치게 격찬을 늘어 놓으면 오히려 작품의 격을 떨어뜨린다는 점을 출판사 마케팅 팀은 유념했으면 좋겠다.

반응형

'Review >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간의 도둑  (0) 2014.12.01
그리스 과학사상사  (0) 2014.11.12
사회경제사  (0) 2014.10.04
프랑스행정재판제도  (0) 2014.10.04
괴테의 사랑과 종교  (0) 2014.10.04

+ Recent posts